::휴먼스턱/[레바해리]

[해리레바] 뛰어내리는 난간에서.

BNtt 2013. 5. 22. 00:11

[팬트롤] 뛰어내리는 난간에서.
Harry X Lebatte 
By. Let's Be
BGM. Inakamono - 아지랑이 데이즈






날씨가 좋아. 병이 날만큼 너무나 눈부신 햇살 속은.


"냐아하, 오늘은 난간을 뛰어넘고싶은 날이네요."
"무슨 말이에요?"
"글쎄요,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
"이대로 도망가버리면 당신이 저 좀 잡아줄래요?"
"어디로 갈건데요?"
"그걸 알려주면 재미없잖아요."
"아까는 잡아달란 듯이 말했잖아요. 그런데, 재미라뇨?"
"잡아줘요. 당신이."
"잠깐!"


붙잡아줘요. 내 소원이야. 도무지 알 수 없던 말을 하던 여자의 말을 깨닫기도 전에, 여자의 몸이 기울어졌다. 키 낮은 난간에 앉아 낭떠러지 위로 다리를 덜렁거리던 여자가 난간을 짚고 뛰어내려 그대로 밑으로 떨어져내렸다. 남자는 생각보다 높은 비탈길의 절벽으로 떨어진 여자로 인해서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놀란 눈으로 아랫쪽으로, 난간에 몸을 기울여 내려다보니 여자는 가볍게 다리를 굽혀 바닥으로 안착한다. 여자는 구부정한 몸을 펴고 남자 쪽을 향해 올려다보고 웃는다. 아무런게 아니란 듯이 여자는 평범하게 웃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멍한 남자는 그녀를 쫓아야하는가 생각이 든다. 여자가 소리내지않고 웃으며 입술로 말한다. 날 쫓아와요. 남자의 시선으로, 그녀가 아지랑이로 흔들리며 웃고있는다. 그 아지랑이춤이 남자를 먹어치우기 전에, 흔들리기 전에 남자가 그 곳에서 움직였다. 좀더 빠르게 남자가 달리기시작한다. 여름의 아지랑이가 그녀에게서 흔들린다. 남자가 난간을 돌아 내리막길로 뛰쳐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여자도 그제서야 그를 따돌리기 위해서 열기가 오른 내리막길을 달린다. 그가 찾을 수 없는 곳까지, 달려야했다. 여자는 그가 좀더 달려, 끝내는 자신을 찾길 바라지않는다. 바랐다.

남자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줄어들지않는 거리에 이상함을 느낀다고 해도, 이 흔들리는 두근거림부터 느껴야한다. 여자는 그를 향해 뒤 한번 돌아보지않고 달렸다. 차만 달리던 도로가에서, 빈 내리막을 내려오고, 좁은 주택가 골목길을 지나, 한적한 산책로까지. 분명 달음박질이 아무리 빠른 여자라고 한들, 건장한 남자를 이길 수 없는 것이 평범, 일텐데도, 여자는 그의 앞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숨은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그가 놓친 것도 알지못한 채 여전히 빈 길을 달리고 있는건가. 남자는 숨을 고르는 것부터가 먼저였다. 건강한 남자였어도 30분 가까이 쉬지도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보니 어쩔 수 없다. 고개를 들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녀를 따라왔을 뿐이지. 푸르스름하기도하고, 검기도 한 털을 가진 고양이가, 남자의 얼굴에서 떨어져 바닥에 스며든 땀자국 옆으로 슥 지나간다. 느릿, 한 걸음으로 여유롭게 지나던 그 고양이는 날렵한 허리를 흔들며 매끄럽게 남자의 옆을 지나 그 앞을 걸어간다. 주인이 없어보이는 길고양이처럼 보였으나, 그 동물은 남자를 아랑곳하지않고 제 갈 길을 걸었다. 오롯이 빈 산책로를 지나는 검푸른 고양이의 뒤를 남자는 끝까지 바라본다. 그 요염히 흔들리는 꼬리는 오로지 자신의 세계를 지켰다. 한참은 멀어진 고양이 앞으로 뾰족하고 검은 구두가 보인다. 남자는 고개를 든다. 여자가 검푸른 고양이를 향해 팔을 뻗어 끌어안는다. 그 둘은 마주 섰다. 멀리서. 다시 여자가 말한다.


"아직이에요. 나를 잡으려면 좀더 나를 따라와야해요."
"어딜 가려구요. 레바테씨."
"후후."


여자의 품에서 검푸른 고양이는 뛰어내렸다. 그 요물은 다시금 자기 길을 걸었다. 남자는 미처 잡으려 손을 뻗기 전에, 천천히 걷던 여자는 또다시 달린다. 무한루프로 도는 꿈처럼 또다시 지루하게 반복된다. 남자는 다음번에 반드시 잡으리라는 기분으로 다시 따라달렸다. 굳이 달리지않았어도 되었다. 그녀가 가고싶어하던대로 가게 둘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힘들여 그녀를 쫓는 이유는. 그건 나중에 그녀에게서 듣기로 하자. 

아직 그녀는 사라지지않았다.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그녀가 눈 앞에서 없어지지않게, 잡아야한다. 여자가 산책로 옆으로 난 풀숲으로 들어간다. 구두를 신고도 여자는 여전히 옅은 미소를 흘리며 그가 그걸 찾아주길 바라는 것 같아 보였다. 남자도 그녀를 따라 풀숲을 헤치고 들어간다. 그녀와의 거리가 줄어든다. 하지만, 그 차이는 천천히 줄었을 뿐이었다.  굵은 나무 사이를 날렵하게 피하는 여자를 따라 그도 따랐다. 그들의 숨바꼭질은 끊어지지않는다. 여자의 앞으로 붉은 빛이 벌어져 비춰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하, 하고 웃었다. 

슬금슬금 벌어지는 나무 틈으로 석양이 비집고 나왔다. 바다를 안은 석양이 여자의 앞도 함께 끌어안아버린다. 눈부신 그 빛에 여자의 눈살은 살짝 찌푸려진다. 그렇지만, 그것도 나쁘지않을 것 같았다. 이대로 멈추는 것도, 달리는 것도, 안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여자는 그렇게 안심한다. 숲에서 여자가 빠져나왔다. 그녀의 앞에서 모래사장도, 붉은 빛 가득, 비어있었다. 숲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한 발짝, 두 발짝 앞으로 걷고서 그 자리에 섰다. 숲과는 조금 거리가 생긴다. 그 빈 거리에 그가 와, 서있었다. 그의 숨도, 그녀의 숨도 가프다. 그녀가 다시 느릿하게 두 발자국 앞으로 걸었다. 붉은 모래사장과 붉은 바다가 가까워졌다. 그녀의 뒤의 그도 가까워진다. 그에게 모래사장도, 바다도 가까워지고, 그녀도 가까워졌다. 그녀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않았다. 그래서 그도 안심이 되었다. 


나를 잡으려면 좀 더 나를 따라와야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미동이 없었다. 좀 더, 라고 떠올랐다. 이번만큼은, 그녀가 도망칠 수 없도록 해야하지않을까. 그대로 그는 안아버린다. 그녀를 뒤돌게 만들게 하거나, 그녀도 뒤돌지 않았다. 굳이 서로를 보지않아도 된다. 귓가에서의 그의 숨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그는 이야기했으니까말이다. 난 잡아줬어요.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녀의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칼이 좀 더 길게 내려앉는다. 그녀는 이야기하지않았다.


잡아줘서 고마워요. 


분명 말하지않는 그녀를 그도 알아줄거라고 생각했으니까말이다. 그녀는 그것을 그에게 묻지않는 대신, 뒤돌아 그의 등을 끌어안는 것으로 만족했다. 모든 대답은 그의 가슴으로 들었겠지.


"그렇다고 뛰어내리진마요, 위험하잖아요."
"냐하, 나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