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해리 01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않고 비어버린 좁은 거리를 이젠 굵어져버린 소나기가 가득 채운다. 해가 밝아오다 만 새벽의 하늘처럼 푸르스름한 거리는 거센 빗소리를 고스란히 듣는다. 군데군데 오래되어 움푹 꺼진 도로에는 빗물이 모여 웅덩이를 이루고,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인해 웅덩이는 넘쳐버린다. 찰박. 넘쳐흘러 내를 이루는 웅덩이를 밟는다. 푸른 거리를 걷는 남자는 축축히 젖어들어 들러붙는 옷깃에도 거리낌이 없다.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긴 코트는 빗물을 흘러내리는 듯, 빨아들이는 듯, 이미 전부 젖어있다. 그럼에도 남자는 서두름 하나조차도 잊었다. 아니면 생각을 해내려 하지않는 걸지도. 남자는 후드를 뒤집어 쓴 채였지만, 바람에 곧 벗겨질듯 아슬하게 걸쳐져있었다. 가려지지못한 날렵한 코 끝으로 고인 빗물이 결국엔 웅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한숨조차 고이지않는 남자의 가슴은 무게조차 느끼지못함을 알지못한다. 마부를 떨어뜨린 말들은 덜컥거리는 마차소리만으로 알아버리고 무작정 걷기만 한다. 계속, 같은 장면을 반복하던 남자가 그제서야 문득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든다. 어둡게 내려있던 그늘이 그쳐올라가고, 남자의 다부진 턱까지 전부 드러난다. 남자의 콧등으로 빗물이 떨어진다. 마주 선 그녀가 그를 보며 소리없이, 반갑게 웃는다. 남자와 똑같은 차림새의 여자는 검은 우산 아래에서 비를 가리고 남자를 바라본다. 그녀가 다가와 쓰고있던 우산을 기울여준다.


"왜 우산도 없이 그냥 나갔어요."
"…."
"어쩐 일로 말도 없이 나가고."
"…."
"적어도 어디 간다고 나한테 이야기해야할 거 아니에요."
"… 잠시 다녀왔습니다."
"… 알았어요."


그녀는 웃으며 우산을 넘겨준다. 그리곤 여느 때처럼 팔로 목을 감아온다. 여자는 안은 남자의 목덜미가 차게 식어있단 것을 느낀다. 분명 잊지못한 '그 곳'을 다녀온 것이리라. 여자는 차가운 남자의 귀에 뺨을 댄다. 비의 냉기에 차갑게 얼어있던 귀가 점점 따뜻해져온다. 여자는 뺨을 떼고 남자를 마주본다. 남자는 여자를 내려다본다. 빗소리는 여전히 그 적막을 깨고 있지만, 그들의 우산을 내쳐내지못했다. 빗물에 차갑게 얼어있을 그의 입술에 입맞춘다. 따뜻한 단 내가 나는 그녀의 입술이 닿는다. 남자의 얼은 몸을 녹이기 위해 찾아온 여자는, 또다시는 그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BN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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